노년에 즐기는 음악

리릭 소프라노의 품격, 키리 테 카나와

easyfly 2025. 7. 11. 06:17

리릭 소프라노의 품격, 키리 테 카나와


클래식 음악계를 수놓았던 수많은 소프라노 중,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만큼 우아함과 따뜻한 음색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인물도 드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순한 음향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이었습니다. 마치 햇살처럼 부드럽게 스며드는 그녀의 노래는 듣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감싸 안았습니다.


뉴질랜드의 딸, 세계의 별로


키리 테 카나와는 1944년 3월 6일, 뉴질랜드의 기스번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오리족과 유럽계의 혼혈로 태어난 그녀는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습니다. 수도원 수녀였던 스승 시스터 메리 레오에게 성악을 배우며 클래식 음악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1965년 뉴질랜드 성악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런던 길드홀 음악원으로 유학의 길에 오릅니다.


오페라 무대의 찬란한 데뷔


1968년, 런던에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 출연하며 데뷔한 그녀는 곧바로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릅니다. 그리고 1971년,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피가로의 결혼>의 백작부인 역을 맡으며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녀의 ‘Porgi amor’는 오페라 팬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고, 그날 이후 그녀는 세계 오페라 무대의 정점에 섰습니다.


황금빛 음색의 여왕


키리 테 카나와의 목소리는 ‘리릭 소프라노’ 특유의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지녔습니다. 그녀는 모차르트, 슈트라우스, 베르디, 푸치니의 오페라에서 왕족과 귀족 역할로 자주 캐스팅되었습니다. 단지 외모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가 품고 있는 고결함과 기품이 역할과 절묘하게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무대는 1981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식입니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헨델의 ‘Let the bright Seraphim’을 불러 전 세계 6억 명의 시청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오페라를 넘어선 활동


오페라 무대뿐만 아니라 콘서트와 가곡, 크로스오버 음반에서도 그녀의 재능은 빛났습니다. 특히 레너드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녹음에서 마리아 역으로 참여해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대중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무대에서 점차 물러나기 시작했고, 2017년 공식 은퇴를 선언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 여정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키리 테 카나와 재단을 설립해 젊은 음악가들을 지원하며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키리 테 카나와의 품격


그녀는 자신이 마오리 혈통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강한 사람입니다. 말해야 할 것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녀의 이러한 당당함과 자기 확신은 무대 위에서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서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서, 그녀는 1982년 영국 왕실로부터 ‘데임(Dame)’ 작위를 받았고, 이후에도 프랑스, 일본,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훈장을 받았습니다.


키리의 노래는 계속됩니다


2019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공연장은 그녀를 기려 ‘키리 테 카나와 극장(Kiri Te Kanawa Theatre)’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이제 하나의 장소가 되었고, 그녀의 노래는 여전히 그 공간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  요약

출생: 1944년, 뉴질랜드 기스번

데뷔: 1968년, <마술피리> 두 번째 여인 역

전성기: 1971년 <피가로의 결혼> 백작부인으로 세계적 명성

대표 무대: 찰스-다이애나 왕실 결혼식, 번스타인 뮤지컬 녹음

목소리: 따뜻하고 기품 있는 리릭 소프라노

은퇴 후 활동: 재단 설립, 젊은 음악가 후원

수훈: 영국 데임 작위, 프랑스·일본 등 각국 명예훈장 수상


키리 테 카나와는 단지 아름답게 노래한 소프라노가 아닙니다. 그녀는 클래식 음악이 품을 수 있는 존엄, 기품, 따뜻함을 모두 보여준 예술가입니다. 그녀의 노래는 시간을 넘어,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